삶의 이야기

새마을운동발상지 기계면 문성리(증빙자료)

특우 2009. 8. 30. 10:54

아직까지는 더위가 있어야 하는 시기인데 상옥 쑥밭(경북수목원이 있는 곳)야간온도가 13도까지 떨어지는

저온이 지속되고 있어 벼들이 제대로 영글지 걱정이 됩니다.

 

오늘은 우리 포항지역 기계면 문성리 새마을발상지에 관한 소식을  전해 봅니다.

이미 잘 알고 계시곘지만,

경상북도에서 청도 신도리마을이 새마을운동발상지라는 발표를 하자

이를 알고 난 기계문성리 마을주민들이 반발을 하며 원조를 찾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새마을발상지에 대한 연구용역을 맡은 업체는 국가기록물 등 증거자료들이 이렇게 있는 것도 모르고

업체에서 조사한 것을 토대로  용역결과를 알리므로서 경북도는 지난 4월 '경상북도 새마을운동 37년사' 연구용역 결과

보도자료를 통해 '새마을운동 발상지는 청도군 청도읍 신도1리로,

새마을운동 모범마을을 포항시 북구 기계면 문성리'로 전격 발표했던 것입니다.

 

발표 이 후 기계 문성동에서는 국가기록물과 증빙자료를 제출하면서

경북도는 불야불야 진화에 나서서 잘못된 것을 시인하고

처음부터 다시 조사를 하겠다 약속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포항 기계 문성리 마을이든 청도 마을이든 간에

정확한 증빙자료들이 있는 마을이 원조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이 진실로 되는 세상이 되어야만 합니다.
진실이 있는 마을이 승리 할 것을 믿습니다.

 

 

어렸을적 새마을운동 시절인 70년대 초 추억이 있는 이웃마을 영상속으로 한 번 가 보이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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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정보화마을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려진 글 하나 소개합니다.


제목 / 새마을운동 발상지 
작성자 / 경북도민
작성일 / 2009/07/30
 
 
박정희 대통령 전 비서실장 ‘김정렴 회고록’, ‘경북마을지’, ‘경북학의 정립과 정신문화연구사’등에 신도마을을 발상지로 기록하고 있다.

1970년 문성동 지도자의 회고록과 문성동 자조의 마을 영상홍보물에서도 선진지인 청도군 신도마을을 견학후 마을가꾸기사업을 했고, 1973년 내무부발행 ‘새마을운동시작에서’란 책자에도 문성동을 성공사례 마을중의 한곳으로 소개 하고 있다.

때문에 포항시민들이 포항시 기계면 문성리가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라고 의의를 제기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출처] ‘새마을 운동 발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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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글을 본 기계면 출향인께서 게시한 글 내용입니다. 

 

제목 / 경북도민님은 보십시오!
작성자 / 류시만   
작성일 / 2009/07/31
 

당신이 경북도민 이라면 나는 먼저 지구인 이라고 말 하고 싶소.
세월이 지난 역사적 일들은 후일에 기록물에 의해 증명 할 수 밖에 없는 일이라는 것은 누구든 다 아는 상식 이라고 생각 합니다.

내가 신도리 기록문 (인터넷 신도리 홈페이지)에 보니 기껏해야 훈장 사진 한 장 달랑 있는 것을 보고 가소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도리는 고인이 된 청도 출신 이의근씨의 힘이라고 생각을 하고, 가리 늦게 하다 보니 마을 어구에서부터 온통 깃발로 치장을 해 놓고, 그 장면은 마치 요즘 신장개업 한 업소나 주유소 인기몰이 만국기 치장 하듯이 디스플레이 해 놓은 마을로 보입니다.

뒤 늦게 개업 할수록 화려하게 손님을 끌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신도리 기록에 보면 그 마을은 1950년대부터 새마을 사업 시작 되었다고 주장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한글을 세종대왕이 창제 한 것이 아니라는 말과도 통한다고 봅니다.
한글을 세종대왕께서 100% 무에서 만드신 것이 아니듯이 새마을 사업도 같은 사고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신도리 보다 훨신 먼저 자기집을 개량하고 또 그로 인해 경쟁적으로 마을이 너도나도 개량 사업을 했을 수도 있지만 문제는 언제 국가적 사업으로 정부 차원에서 시작을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신도리를 본을 보았든 자체적으로 시행을 했던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반포 하셨듯이 국가가 시행을 하도록 한 것이 시초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것을 인정하지 못 하다면 개인적으로 누가 먼저 했는지 까지도 따져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모든 방송 매체가 동의보감이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에 대하여 방송이 됬습니다. 허준이 그 많은 것을 직접 다 시험하고 동의보감을 만든것이 아니라 선배가 한 것과 자기가 한 것을 정리하여 세상에 내 놓은 그의 업적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중국이 시비를 하여 지들이 먼저 했다고 할 것입니다. 지금 중국이 시비를 못하는 것과 똑 같은 원리 임을 경북도민은 알아야 합니다. 당신의 주장대로라면 허준의 동의보감은 중국의 시비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제발 억지주장 하지 마십시오!  경북도민님.
그리고 하루 빨리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 현존하시는 당사자와 후 세대에게 죄를 짖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이 경북도민이라고 하니 내가 글 표현하기도 좀 좋은 면도 있습니다.

 

 

자료출처 / 기계정보화마을 홈페이지 


 

 

 

 

고향을 떠나 산업전선에서 수고하시는 출향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요즘 농촌엔  농사에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네요

출향민여러분 지금 고향엔 옛지명 경북 영일군 기계면 문성동 의 왜곡되어버린 새마을운동발상지

역사를 바로잡기위해 온주민, 새마을운동 진상규명위원회가 한마음이 되어 혼신을 다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 부터 40여년전 1970년대 보릿고개가 태산보다 높던시절 가난탈출을 위해

영일군 기계면 문성동에서 새마을 가꾸기 사업이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근면,자조.협동을 바탕으로 농촌에서부터 불기 시작한 새마을운동이

경이적인 경제발전으로 이어져 오늘날 경제대국에 이르게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경북도는 지난 4월 '경상북도 새마을운동 37년사' 연구용역 결과 보도자료를 통해

'새마을운동 발상지는 청도군 청도읍 신도1리로, 새마을운동 모범마을을 포항시 북구 기계면 문성리'로 전격 발표했습니다.

 

이에 우리 기계면 주민들은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기와 내무부 새마을운동 책자, 1970년 대한뉴스, 새마을가꾸기사업으로 전국 최초로 대통령 표창, 박정희 대통령 현지 방문 등 포항시 기계면 문성리가 새마을운동 발상지임을 입증하는 관련 자료들이 용역보고서에 전혀 반영되지 않은 용역결과를 신뢰할 수 없어

 

이상범 포항시의원을 주축으로

경북도와 청도군을 상대로 대구지법에 '새마을운동 발상지는 청도군 신도1리'라는 취지의 부분을 전시·배포'공표 등 일체의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의'명예훼손금지 및 사용금지 가처분'신청을 제출했습니다.

 

이처럼 새마을발상지 논란은 비단 기계면 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52만 포항시민의 일임을 알리기 위해 인터넷 등 모든 매체를 통한 알리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헤아려

아래 당시의 소중한 자료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새마을 발상지가 우리 지역 "포항시 기계면 문성리" 임을 되찾을때 까지 주민모두 많은 관심 가져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새마을발상지(기계면 문성리) 박정희대통령 방문 동영상

새마을가꾸기 운동 제1차년도(1971년) 평가에서 전국에서 경북이 우수도로 선정되었고 경북에서 우수마을로 선정된 기계면 문성 마을에 박정희 대통령께서 방문하여, 마을 시찰모습과 말씀하신 내용을 담아 국정홍보용(대한뉴스)으로 제작

국가기록물과 e-영상 역사관에 나오는 원본 영상물을 글로 옮겨보았습니다 경청해주세요

img1.gif

 

제작연도 : 1971-01-30   상영시간 :00분 56초 출처 :대한뉴스 제 812호

 잘사는 농촌을 (손을 가르키는 방향으로 주소를 클릭해보세요 )

 

경북 영일군 문성동의 새마을운동

-경북영일군 문성동 마을전경

-양계, 양잠 양수시설,도로확장공사

 

출처 : 대한뉴스 제 812호

 

http://ehistory.korea.kr/pop/movie_pop.jsp?srcgbn=KV&mediaid=697&mediadtl=6048&gbn=DH&quality=W

 

 

여기 더 좀 잘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며

가난을 무릅쓰고 일어선 농촌이 있습니다

경상북도 영일군 기계면 문성동을 중심으로 한

이일대는 앞장서자, 의존하지말자, 도박하지말자는 표어를 내걸고

의욕과 노력으로 더불어 그 새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봄이 되면은 30퍼센트 이상의 전량농가가 나오고

도시로 품팔이나가는 이농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던것이 기계면 현내동 이석걸씨

뜻이 있는사람들이 새마을가꾸기운동을 벌여

양계, 양잠등 농가 부업으로 가난을 쓸어내고

 

양수시설을 갖추고 천수답을 수리안전답으로 바꿨는가 하면

몇몇 전 농가에 지붕도 말끔히 기와와 스레트로 개량하는등

정말 잘사는마을을 이룩하게 된것입니다

 

이외에도 많은자료들이 있습니다

  img1.gif

  자조하는마을을 ...경제동향 보고에서 제작연도 1971년 -08-14일 상영시간 01분30초

 

클릭http://ehistory.korea.kr/pop/movie_pop.jsp?srcgbn=KV&mediaid=725&mediadtl=5309&gbn=DH&quality=W

 

박정희 대통령은7월5일에 있었던

월례경제동향보고 석상에서

정부는 농민의 정신자원개발에 치중하고

농촌지도에 새로운방향을 모색하라고 지시한다음

정부가 농민을 돕는것도 농민의 자조하는 자세가 있을때

비로서 성과가 있는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박대통령은 이날 농촌자조마을 사업에 시범을 보인

경상북도 영일군수 박준무씨에게 녹조 근장훈장을

그리고 새마을가꾸기 시범 부락엔

역시 경상북도 기계면 문성동 농촌지도자 홍선표씨에게

국민포장을 각각 주었습니다 그럼여기서 새마을가꾸기 시범부락으로

국민포장을 받은 경상북도 영일군기계면 문성동 현장을 찾아봅니다

불과 2,3년 전까지만해도 봄이되면은 30퍼센트의 전량농가가 생기고

도시로 이농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던것이 뜻이 있는 마을젊은이들이 새마을가꾸기운동을 가꿔

힘을 합해 농로를넓히고 양계, 양잠등 농가 부업을 장만해서

가난을 물리치는데 힘써왔습니다

그 결과 스스로돕고 서로 힘을 합한다는것이

얼마나 요긴한일인가를 깨닫게 돼

오늘같이 새마을로 큰 모습을 바꿔놓았습니다

 

새마을가꾸기 사업 성공사례 (영상물)

 

 

마침내 엄동설한 추운날씨에 점심밥을 먹고 오는 시간이 아까워 부녀자들을 통해

 

들에 밥을날라 먹으며 일한 새마을가꾸기 사업은 시작되었습니다

 

생나무에 불이 붙듯 부락 공동작업도 불이 붙긴 힘들어도  한번불이 붙으니깐

그힘은 무섭게 번저 나갔습니다 청년들은 산에서 돌을날라 척축을 쌓고

 

 모든주민들은 길만들기에 동원되었습니다

정말 온동민이 하나가되어 결사적으로 일했습니다

나는 마음마저 숙연해지고 동장과 주머니를 털어 막걸리를 사서 동민들의 노고를

 

위로 해주는데 그쳤습니다

우리가 내놓은 구호대로 문성동민은  앞장을 서고 도박 풍조를 없앴습니다

 

남에게 한푼의 도움도 없이 가난한 농가의 주머니를 털어 일을 해나갔습니다

나도 몹시 바빠졌습니다

그래서 중고품 오토바이를 하나 샀습니다

노름으로 재산을 없애던 내가 좋은일을 한다니까 내 처가 방앗간의 일을 해서

푼푼이 모은돈으로 서슴없이 사주었습니다

 

일은 얼마든지 하겠다 도저히 힘에 붙이는일은 도와달라

새마을가꾸기 사업에 때론 부락에

힘에 벅찬일도 있었습니다 이런주민의 정성에

 

정부도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새마을사업에 영일군에서는

  335포의 시멘트 와 군수가 앞장서서 기술지원까지 해주었습니다 농로건설,

하천재방 호수와 함께 다음에 담장개수 와

 

초가를 없애는 지붕개량사업입니다 나는 지붕 을 덥기 위해

  스레트를 외상을 얻기위해 안간힘을썼습니다

전부 안가본대없이 회사를 찾아가 사정을 했습니다

 마침내 나는 한국 스레트  회사에서

 

일년 외상의 스레트를 계약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같은 값으로 기와모양의 스레트를 샀습니다 호당평균 삼만원 어치나 되는데

 농촌경제 형편으로

한번에 지출하지 못하고 계약때 만원 보리타작때 만원

가을추수가 끝나면 잔금을 주기로 한것입니다

 

나는 좋아하는 부락민의 얼굴을 생각하며 운전석을 재촉했습니다

30평의 마을  회관과 폭 5m 길이 800 미터의 진입로 와

1600 미터의 농로도 반년만에 완성시켰습니다

천년묵은 초라한  농촌의 모습도 말끔히 씻어 내어버린것입니다

 나는 일년전 가뭄에 콩나듯 기와집이 보이던 문성동 모습

 이제는 뜸뜸이 보이는 초가집이 몹시 초라하게 보입니다

 

우린 이런 초가집도 곧 없어 질것입니다

그리고 새마을가꾸기 사업은 공동우물, 부엌개량, 공동빨래터등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모든일에 미쳤습니다

 

 문성동은 이제 환경개선과 함께 농가소득도 몇년전 집단 이농민이

 생겼던때와 비교하면 훨씬높아졌습니다

 

 즉, 1967년도 30마력의 양수기를 70년엔 100 마력으로 증설 ......

천수답을 완전수리안전답으로 바꾸었고

 

1967년 먹을양식 조차 재대로 거두지 못했던

 12종모의 논을 과감히 논, 밭으로 바꾸고

 

 

1970년엔 270만의 수익 까지 올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양계도 67년 300수에서 70년엔 6500 수까지...

그리고 지금 문성동에는 양송이 재배사를 유치하여

 지붕개량으로 남는 짚을 값비사게팔게되고

여기에 취업해서 노인의 수입까지 올리게 된것입니다

 

경상북도 내에서 제일 못살았던 문성동 과거 소득이 10만원 내여던

 문성동이 이제는 소득도 그2배의 23만원  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에만족지 않고 또 일을 합니다

앞으로 뒷산 청정..를 밤나무 단지로 만들고

 

마을 하천에 재방을 쌓아서 물길을 바로잡고 7000고의 하천부지를

옥토로 바꿔1975년엔 농가소득을 42만5천원까지 된것입니다

문성동의 성공사례는

기계면 전체에 포함되겠습니다

 

나는 더욱더 바빠졌습니다

결국 머리가 좋지못한 내가 면전체의 골몰하다보니 좌왕우왕 밖에 할수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고를 내고 말았던것입니다

 

앞으로 좀더 차분하게 계휙하며 일 해야겠습니다

아니 밀려오는 파도처럼 걷잡지못하게 펼쳐진 기계면 전체에 잘사는 의욕에 나는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것입니다

 

  대한뉴스 자조의 마을 기계면 문성동 영상 자료 중 고 박정희 대통령 육성 내용

“뜻이 있는 곳에 반드시 길이 있다”는 이런 말이 있는데 영일군의 문성동 홍이장 지도하에 67년부터 한 불과 34년 동안에 어수선한 마을이 오늘날 이렇게 부흥이 되었고 그 부락이 전 군에 있는 농민들이 전부 궐기를 할 수 있는 이런 계기가 되었다.

새마을 가꾸기 운동에 한 부락에 시멘트 한 10만원 정도 되는 걸 줘가지고 480만원어치 일을 단 몇 달 동안에 해치웠다.

정부가 지원해 준대 약 48배의 일을 단 몇 달 동안 해치웠다 하니, 이건 놀랄만한 사실이고 농민들 머리속에 이러한 정신이 일어난다는건 우리농촌에 하나의 혁명이 일어났다고 이렇게 봐도 좋을 겁니다.

 

 

새마을 발상지 표석

 

 

기계면문성리 마을안길 넓히기 공동작업 장면입니다

 

 

 

영일군 기계면 문성동 퇘비증산)


img2.gif

 



 


 





기계면문성리 진입로확장 공동작업 장면입니다

 

기계면문성리 새마을사업 - 공동빨래터 모습입니다

 

기계면 문성리 새마을사업 - 리어카 나누기사업 장면입니다

 

70년 도내 읍면장 기계면문성리 견학장면입니다

 

문성리입구에 건립된 새마을운동발상지 및 박정희대통령

방문기념비 전경입니다

(1967년 새마을 사업 일환으로 양수장 설치 기념 및

1971년도 박정희 대통령 기계면 문성리 방문 기념비)

 

전국최초 새마을운동유공 훈장받는 기계면문성리 새마을지도자 모습입니다

 

기계면 문성리 홍이장과 대화하시는 박정희대통령과

시찰단 모습입니다

 

기계면 문성리의 잘정리된 마을안길을 시찰하시는

박정희대통령과 시찰단의 모습입니다

 

기계면문성리 시찰중 농가를 방문하신 박정희대통령께서

한 할머니와 대화하시는 모습입니다

 

기계면문성리 시찰중 스레트지붕으로 개량된 농가를 방문하신 박정희대통령 모습입니다

 

기계면 문성리 마을을 사찰하시는 박정희대통령과

사찰단의 모습입니다

 

1971. 9. 17 전국무위원. 시도지사. 시장군수. 경찰서장까지 대동하시고

 지붕개량, 홀치기,도로확장, 양수시설등 마을 구석구석을 시찰하시면서

새마을사업과정을 설명들으시는 모습

 

홀치기, 가마니짜는 농가를 방문하신 박정희대통령의 모습입니다.

 

새마을운동발상지 문성리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

 

새마을운동관련사진

 

1971. 9. 17.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포항 기계면 문성동 현지에서 관계장관 ,중앙부처장관, 시도지사, 전국 시장, 군수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시장 군수는 문성동과 같은 새마을을 만들어라" 고 지시하신 모습

 

 '청와대에서 모셔간 머슴의 아들' 류태영 박사

http://blog.daum.net/kjb5841/15863055?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kjb5841%2F15863055

 

 결실을 맺은 새마을 운동, 핵심은 “정신개조”

▶ 새마을 운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거예요?
KBS 방송국에서 방송하라고 해서 3년간 아침 농가 방송을 했어요.

그렇게 1년쯤 되었을 때 청와대에서 전화가 왔어요.

청와대에 들어갔더니 우리나라 농촌을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묻더라고요.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기 전이었어요.

그래서 덴마크 예를 들고 이스라엘 예를 들고,

 

우리나라 농촌에서 못 살던 경험과 머슴살이 하던 얘기 등 다 이야기를 했죠.

그랬더니 박정희 대통령이 내일부터 여기 와서 농촌운동을 하라고 하는 거예요.

아니, 학교에서도 농촌운동을 하는데 어떻게 내일부터 여기에 와서 하느냐고 했더니

학교 사표 내라고 하더라고요.

 

곤란하다고, 어떻게 오늘 밤 10시에 사표 내고 내일부터 오겠느냐고

그럴 수 없다고 했더니 알았다고 가라고 하대요.

없던 일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집에 돌아오니 12시 반이 됐어요.

아침에 8시쯤 학교에 나갔더니 총장님과 이사장님이 학교에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우리집에는 전화가 없던 시절이니까요. 갔더니 눈이 동그래져가지고 있어요.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밤 12시가 넘어서 중앙정보부청와대 문교부에서

전화를 걸어서 ‘내일 아침 류태영 선생이 출근을 하면 아무런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서 청와대로 보내라’고 했대요.

 

그래서 총장님이 그러더라고요. 사무인계고 과목이고 강의고 아무 걱정 말고

지금 얼른 들어가라고요. 대통령께 말씀 드리라고, ‘건대 총장님께서 우리학교의 영광입니다. 그러면서 보내더라’고 말을 전해 달래요.

가서 보니까 앉을 자리가 없어요. 무슨 계획이 있던 게 아니에요.

나한테 어제 저녁 늦게까지 듣다가 결심한 거죠.

그래서 내가 들어가서 방을 만들게 된 거예요.

 

급작스럽게 사무실이 나오나요? 일할 사람이 있나요? 일 할 사람을 스카우트하는 거예요.

그때 정정택 장관님이 당시 홍성철 수석 밑에 있었는데 정장관과 함께 다니면서,

사람도 구해서 들여오고 해서 시작된 게 새마을 운동이에요.아무것도 없어요.

사람들 불러다 놓는데 다 나만 쳐다봐요.

 

어떻게 하느냐고요. 그래서 덴마크에서 배운 것을 100% 써 먹은 것이 새마을 운동입니다.

100% 써먹었다는 것이 ‘정신개조’에요.

온 국민이 정신을 의식개조를 하고 정신개조를 해서,

결국 생활개선도 하고 경제발전도 하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거였어요.

동대산
2009.08.29
18:18:42
많은 자료 준비 하는데 정말 수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완벽한 자료가 있는데 꼭 좋은 결과가 있을거라 믿습니다.
앞장서 일하시는 모든분 계속 수고해 주세요
안영선
2009.08.29
19:15:31
오직 새마을운동 발상지
진실을 찾기위해 산증인들을 만나려 한양천리 지친몸으로 떠나는길 엄마잃은슬픔을 뒤로한채 내 고장의 역사를 위하여 피곤이 몰아쳐도 몰골은 엉망인체 내고장
산증인을 찾아 한양천리길을 달려가 그때그시절 새마을운동 선구자를 만남은
감회가 새로웠음다
안영선
2009.08.29
19:19:06
대통령도 모르고 본인 (류태영박사)도 모르는일이면 모르지만
고 박정희 대통령께 청와대로 불러가 초대새마을담당비서관을 하신분의 증언에
그냥 감동 감격 그자체였습니다 흥분된마음으로 끝까지 증언을 들었는데
대통령이 인정하고 국가문서에 공인된 원조발상지임을 강조하더이다

포항시 52만 시민의 새마을운동발상지 축제의날을 맞이합시다
동대산님의 격려의 힘이 모아져서 큰 힘이 될것입니다
안영선
2009.08.29
19:28:32
역사의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곳이 그때그시절 명칭( 영일군 기계면 문성동) 국가자료에도 명백함을 나타나는데 무슨 더말할 필요가 있냐고 하더군요
새마을에대해서 잘 알지못하면서 너도나도 외국에 수출하고 홍보한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래서 새마을 운동을 바로알리기위해 고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에 녹취록을 썼다고 하더이다 ^^ 자라라는아이들에게 혼란없는교육이 되길바랄뿐입니다
서명자
2009.08.30
08:33:25
안샘 이곳까지 오셨구려!! 이렇게 긴 자료는 누구있어 볼까나!!
상옥 마을 여러분 길더라도 긴~숨 내쉬시고 함 읽어 보세요.
하늘 가까운 이 마을에느 하느님의 축복 또한 많지 않겠소이까?!!
늘 건강하시고 씩씩한 매일이었음 좋겠습니다.

 

 

동대산
2009.08.30
17:28:40
안영선, 서명자님 참느리홈 방문 환영합니다.
안샘은 친정어머님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내시고
마음 추스릴 시간도 없이 새마을발상지와 관련한 업무를
보시느라 연일 수고가 많습니다.
늘 최선을 다하시는 안샘을 보면서 많은걸 배웁니다
서명자님께서는
요즈음 새마을발상지 건과 관련하여 마음이 불편하시지요
용기 내시구요
내내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