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5년 8월10일 대동일보에 소개된 특우의 기사내용
『농기계 고장으로 농사시기를 놓쳤을 때 농부들은 가장 가슴 아파합니다.』
浦項시 北구 竹長면 上玉2리 金貞烈씨(김정열.37). 金씨는 浦項시에서 가장 오지인 上玉리와 下玉리 일대의 농기계 수리를 책임지고 있다.
上 . 下玉리는 3백여 가구에 1천2백 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고추 담배 고랭지채소 약초재배 등 주민전체가 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있다.
또 이곳에서 浦項시내로 나오기 위해서는 죽장 청하 기계 등 3개 방향이 있으나 모두가 비포장 도로다.
농사일 도중에 농기계가 고장이 나면 농기계를 메고 수십리 길을 갈 수도 없다. 또 시내 농기계수리 센터에서는 워낙 길이 험하고 멀기 때문에 출장수리를 꺼려한다.
따라서 농기계 수리점은 이 곳 주민들의 최대 바람이기도 했다.
金씨는 주민들의 이러한 불편함을 덜어주는 해결사 역할을 맡고 있다.
金씨가 이 일을 맡아 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숨어 있다.
金씨는 태어나서부터 이곳에서 생활한 토박이로써 이곳 대부분 가정의 자녀들처럼 농사꾼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평범한 농사꾼이 아닌 또렷한 의식을 지닌 농사꾼이고자 했다.
김해와 慶州등지를 다니며 비닐하우스 재배 농법을 배웠다.
이를 바탕으로 이 고장에서는 처음으로 선진 농업기술인 하우스농업을 시도했다.
이 때가 1978년도 당시 나이가 약관 19세.
주민 대다수가 농한기 동안 별일 없이 무료한 생활을 하기 일쑤였고 이에 대신할 어떤 생산적인 일을 찾다가 하우스 농법을 익히게 됐다며 金씨는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나 2년여 동안의 하우스 농업은 생산한 농산물 판매 등의 악재와
경험부족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앞집 뒷집에서 빌려쓴 농자금만 수백만원. 졸지에 빚쟁이가 된 것이다.
비닐하우스 農事실패… 기술자로 변신
上玉·下玉리 일대 農機械수리 ″해결사″
이를 계기로 울산 현대중공업 직업훈련원에 들어가 기술을 배운 뒤 기술자로 새롭게 변신한 후 중동건설현장을 누볐고 돈도 벌었다.
비닐하우스 실패로 졌던 빚도 모두 청산했다.
농촌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을 상당한 돈벌이에 기술자로서의 확실한 신분도 보장돼 있었다.
그러나 金씨의 마음 한 구석엔 늘 고향으로 돌아가 고향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침내 지난 86년 기술자로서의 확실한 직위를 차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갈고 닦은 자신의 기술을 고향주민들을 위해 쓰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내가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직 농기계 수리점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金씨의 농기계 수리 일이 벌써 11년째.
신통찮은 돈벌이지만 주민들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버텨 왔다.
땅 한 평 없이 맨몸으로 들어와 대출을 받아 집도 장만했고 농약과 종묘를 판매하는 가게도 마련해 생활의 기반도 다졌다.
이제 이곳 주민들은 金씨를 통하지 않고는 농사를 지을 수 없을 정도.
산비탈이건 계곡 중간이건 주민들의 요청만 있으면 밤낮 가리지 않고 항상 달려가는 충실한 해결사다.
1995년 8월10일 대동일보 鄭徹和기자
당신은모르리-이미자 하모니카연주 정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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