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 기계중학교 상옥분교장
큰 사람 키우는 작은 학교
전교생 24명...벽지 학교에서 예술제 개최
나는 고추잠자리처럼, 좁은 마을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가보고 싶어했지만, 자동차로
몇시간이 걸려서 겨우 갈 수 있는 도회지에 갈 기회가 일년에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그래서
소풍 때만은 멀리 도회지로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2학년 강주영 / 제 29회 화랑문화제 산문 부분 은상 수상작 '선물' 중에서)
포항 시내에서 북쪽으로 차를 달려 1시간 남짓. 구불구불 비탈진 길을 가다 보면 온통 산으
로 둘러싸인 죽장면 상옥리에 들어서게 된다. 고산분지로 형성된 산골마을 상옥리는 포항
하늘 아래의 첫 동네인 것이다.
상옥은 옛부터 고내, 고래라고 불렸는데 마을의 지형이 고래와 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졌
다는 설도 있고, 높은 곳에서 냇물이 흐른다는 뜻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상옥리에서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나지막한 키로 마을 가운
데 자리잡은 학교다. 운동장 주변, 나뭇잎도 다 떨어진 앙상한 나무들이 쓸쓸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지는 정겨운 학교, 바로 기계중학교 상옥분교장이다.
지난해 이어 예술제 개최...지역 주민들의 축제장
상옥분교장의 전교생이라야 24명이 전부. 그런데 이들이 11월 30일부터 12월 1일까지 이틀
간 '제 2회 고래 예술제' 를 열었다.
지역 주민들과 학부모, 동창회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테이프를 끓은 이번 예술제는 풍경
화.모자이크.도예.수석 등과 같은 미술 작품, 46편의 시화 작품, 그리고 과학.기술 실습
작품이 한 자리에 전시됐다.
또 영어 연극 공연, 태극 기공 18식 시범, 외국 민속 무용 발표는 모인 사람들의 많은 박수
를 받았다.
특히 오카리나 독주, 팬플루트와 크로마하프의 합주, 소프라노.알토.베이스.테너까지 화
음을 맞춘 리코더 합주 등을 선보인 음악 발표회은 도저히 산간 벽지 학교 학생들이 준비한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다채롭고 내용 면에서도 알찬 순서였다.
3학년 정은주(16) 학생은 "태극 기공 자세 잡는 건 힘들었지만, 춤이랑 연주 연습하는 건
재미있었어요.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서 연습한 한달 동안 정말 즐거웠어요" 라고 말하며
수줍게 웃었다.
발표회가 끝난 뒤에는 한 상 가득 마련된 음식들은 모든 주민들이 함께 나누며 친교의 시간
을 가졌다.
'고래 예술제' 는 학생들이 평소 수업 시간에 익힌 재능과 방과 후 특기.적성 교육 호라동
을 통해 쌓아 온 솜씨들을 한 자리에 모아 발표하는 시간인 동시에, 봄부터 들판에서 땀흘
린 학부모와 주민들의 수고를 위로하는 마을 잔치 자리였다.
낙후된 여건...모든 교직원이 학생 지도에 열성 다해
상옥은 고랭지 채소 재배지로 널리 알려져 있고, 지금도 담배, 고추, 약초 등을 많이 생산하
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일은 많고 일손은 부족하다 보니 고령의 학부모들은 밤늦
게까지 일터에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역 내에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교육 시설이나 문화 공간은 전무한 상태이다.
그래서 상옥분교장의 선생님들은 부모들의 실제 귀가 시간인 저녁 8시까지 무보수로 학생들
을 지도하고 있다. 교사들이 모두 학교 내에 마련된 사택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시간에 관계
없이 24시간 학생들과 교류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더군다나 교사 9명에 일반직 직원 2명, 모두 11명의 교직원이 학생들을 돌보다 보니 개인차
를 고려한 양질의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인성 교육에 역점을 두어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서정만(55) 교감은 "아이들을 보면 정말
사람의 능력은 끝이 없구나, 얼마든지 개발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며 "백지와 같
은 아이들이 교육을 통해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 고 밝혔다.
선생님들의 열성적인 가르침 덕분에 상옥분교장 학생들은 대외 활동에서도 큰 두각을 나타
내고 있다. 경상북도 교육청이 주관한 제 29회 화랑문화제에서 2학년 학생 3명이 문예 부분
에서 은상을 수상하였고, 과학기술부와 동아일보가 주관한 전국 학생과학발명품 경진대회에
서도 입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국어 시간을 이용해 간흑 학교 근처 당숲에서 자연경관을 소재로, 평소 생각을 글로 옮기는
연습을 시킨다는 국어과 구항회(45) 교사.
그는 "아이들의 가장 큰 장점은 도시의 물질 문명에 물들지 않고 아름다운 자연을 대하는
순수함" 이며, "작품 자체에도 가식이 없고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 입상하게
된 계기" 라고 말했다.
학교.학생.지역 주민은 모두 한가족
부모님들은 열정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께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택에서 손수 밥을 지어 끼니를 해결하는 교사들을 위해 가끔씩 국수를 말아서 대
접하기도 하고,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는 희식 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상옥분교장의 교무실은 웃음이 넘치고 화기애애하다. 주말만 빼놓고는 거의 함께 생활해서
그런지 모두 한 식구처럼 다정한 모습이다.
학생들 또한 일년 가야 한 번 다투는 일이 없다고 한다. 학교 폭력이니 왕따니 하는 말도
상옥분교장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때묻지 않은 심성으로 모두 친형제처럼 지내
기 때문이다.
3학년 학생들이 리코더로 합주한, 겨울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미튜에트(Krieger 곡)가 아직
귓가에 남아 있는 듯 하다. 먼길 왔다며 후끈 달아오른 난로 옆으로 의자를 내어 주신 선생
님, 진지한 눈빛으로 일인 다역을 해내던 학생들, 그리고 아이들의 사물놀이 공연에 흥겹게
추임새를 넣으시던 마을 어른들.
미래를 향한 꿈이 큰,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왔다는 뿌듯함에 산아래 작은 마을 상옥을 뒤
로하고 나오면서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졌다.
김혜원 리포터 emmaus7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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