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우/식물약국운영 시절

친환경농업의 이해

특우 2007. 12. 10. 06:37
이곳을 찾으시는 님들 ~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동대산-


아래의 글은 농촌진흥청 농업과학기술원의 홍종운 박사님의 글입니다 
친환경농업을 하시는 농민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승낙을 받고 글을 옮겨봅니다.           =식물약국경영자 동대산=
친환경농업의 이해 
환경도 생각하는 농업, 그것이 바로 환경농업이다. 
농사는 왜 짓는가? 농산물을 얻기 위해 짓는다. 
그렇다면 요즘 말하는 환경농업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처럼 얼른 하기는 어렵다. 
어떤 이들은 환경농업을 환경친화형 농업이라고 이해하려 하고 
어떤 이들은 환경보존형 농업이라고 이해하려 한다. 
그런데 이들 용어는 농사를 짓는 목적이 농산물을 얻는 데에 보다 환경의 
질을 높이고 보존하는 데에 더 있는 것으로 오도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사실은 환경친화형 농업이라는 말을 쓰던 환경보존형 농업이란 말을 쓰던 
농사를 짓는 일차적인 목적은 농산물을 얻는 데에 있는 것이고 환경문제는 
이차적인 고려 사항인 것이다.
즉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농사를 짓되 환경교란을 불가피한 수준 이상이 
되게 하지 말자는 것이다. 
만약 환경농업의 목적이 환경을 전혀 교란하지 않는 것이라면 농사짓는 
일은 포기해야 할 것이다. 
어떤 방법의 농사라도 환경을 전혀 교란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환경을 전혀 교란하지 않으려면 환경을 자연상태 그대로 두어야 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농사를 지을 때 화학비료나 합성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유기물이나 
그 밖의 자재를 쓰면 환경을 교란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며 화학비료나 
합성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지어 생산한 농산물을 무공해 
농산물이라고까지 여긴다. 
이런 생각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화학비료나 합성농약을 사용하든 하지 않든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어떤 땅에 이미 있던 식물들을 제거하고 땅을 갈고 고랑과 이랑을 만드는 등 
땅을 파헤쳐야 한다. 그리고 특정한 식물 즉 농작물을 심어야 한다. 
또 어떤 방법으로이든 병과 해충도 방제해야 하며 잡초도 제거해야 한다. 
이 모든 일이 자연생태계와 토양을 교란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농법을 환경을 교란하지 않는 농법이라고 할 수 없다. 
둘째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유기질비료를 사용하면 환경이 교란되지 
않는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유기질비료에도 화학비료에 들어 있는 질소, 인산, 가리 등이 들어 있고 
토양의 성질을 악화시킬 수 있는 염분도 들어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유해한 중금속도 들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유기질비료를 사용하는 것이 환경 친화적이라고 여기는 것은 옳지 않다. 
사실은 유기질비료를 잘 못 사용하면 화학비료를 적절히 쓸 때보다 
환경에 대한 악영향이 더 심할 수 있다. 
시제로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 시설재배지 토양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유기질비료를 적절하지 않게 사용해온 우리나라 시설재배지 토양 중에는 
염분, 인산, 가리 등의 함량이 너무 높은 경우가 매우 많다. 
어떤 땅에 많은 양의 유기물을 넣기 위해 산이나 그 밖의 곳에서 
유기물을 채취하여 퇴비로 만들어 쓰는 것은 그 농토를 비옥하게 
하기 위해 그 농토 이외의 땅을 척박하게 만든다는 문제점도 갖는다. 
화학비료가 없던 시절에  대부분의 우리나라 농가는 산과 들에 나는 
풀을 베어 퇴비를 만들어 농토에 썼었다. 
그 결과 산지의 토양이 척박해져 그 때는 해마다 많은 나무를 심어도 
심은 나무가 자라지 못 했다. 
우리나라에서 화학비료가 충분히 생산되었을 때 농토에 화학비료를 
적절히 주고 산에 나무를 심을 때에도 나무에 화학비료를 주고 나서부터 
심은 나무가 제대로 자라 오늘 날 보는 산이 되었다.
만약 우리나라가 화학비료를 충분히 생산하지 못해 아직까지도 산과 들에 
나는 풀로 퇴비를 만들어 써야할 처지였다면 오늘날 우리의 산은 옛날의 
산이나 다를 바 없이 민둥산이었을 것이다. 
나무 없는 산을 상상해보자.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병, 해충, 또는 잡초를 관리하기 위해 화학적으로 합성된 농약을 사용하는 
대신 여러 가지 이른바 유기농업자재들을 사용하는 것이 반드시 
더 환경 친화적이라고 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도 그들 자재들의 효과가 확실히 밝혀진 바도 없고 그런 자재들을 
제조하는 과정에도 인력과 과 자원이 필요하며 환경을 교란하는 요인이 
개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목초액을 다량 생산하려면 많은 나무를 잘라내야 할 것이며 
가축분과 톱밥을 섞어 만든 유기질비료를 만드는 데에도 나무가 필요하다.) 
환경농업을 논할 때 우리는 합리성과 현실성에 바탕을 두어야 할 것이다. 
우선 현실적인 환경농업에 대한 인식부터 확립해야 할 것이다. 
현실적인 환경농업은 농사를 지으면서 어쩔 수 없이 환경을 교란하기는 하되 
그것을 최소 수준 이상이 되지 않게 하는 농업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현실적인 환경농업이란 적정한 수준의 농산물 수량을 추구하면서 
농사를 짓되 환경도 최대한 고려하는 농업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환경농업의 실천을 위해서는 환경과 농업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는 환경의 의미에 대한 이해는 의외로 부적절한 것 같다. 
어떤 포장에 화학비료나 합성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환경농업을 
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은 것이 문제다. 
농업에 있어서 환경이란 그렇게 국지적인 것이 아니다. 
예컨대 토양만이 환경이 아니다. 대기와 물도 환경이다. 
어떤 밭이나 논에  농약을 사용하지 않았다 해도 인근의 밭이나 논에 
농약을 썼다면 그 논이나 밭에서 수확한 농산물도 농약에 전혀 노출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경우 그 밭이나 논에 농약을 썼는가 쓰지 않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확된 농산물에 농약이 위험수준 이상으로  남아 있느냐  
남아 있지 않으냐 일 것이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어떤 포장에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기 위해 산이나 들에서 풀을 베어 퇴비를 만들어 쓴다면 
이 역시 환경 친화적이라 할 수 없다.
이 경우 환경의 범위는 어떤 논이나 밭에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면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즉 요즘에는 농자재를 운반할 때 
차량으로부터 발생하는 탄산가스도 공해물질로 여겨진다.
탄산가스는 온실가스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화학비료를 쓸 때에 비해 
유기질비료를 쓸 때에 운반해야 할 물량이 훨씬 많기 때문에 차량에서 
발생하는 탄산가스의 양도 훨씬 많아진다. 
따라서 비료를 먼 곳에서 운반해야 할 경우에는 온실가스 발생이라는 
면에서 볼 때 유기질비료를 쓰는 편이 오히려 환경을 더 오염시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환경농업을 논할 때 환경을 미시적으로 보지말고 거시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환경농업을 논할 때 농업의 듯을 바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환경농업이라는 말에 있어서 비록 환경이란 단어가 앞에 놓이지만  
환경농업이란 말의 주된 요소는 농업이다. 
따라서 환경농업을 한다고 해서 농산물 생산의 중요도를 축소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농사를 짓는 목적은 적절한 수준의 수량을 얻는 데에 있다. 
따라서 환경농업을 한다고 농사의 생산성을 지나치게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특히 인구에 비해 농지의 면적이 작고 농촌의 인건비가 비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바로 이런 경우다. 
합리적인 환경농업의 구체적인 방법은 이렇다. 즉 환경농업을 하려면  
우선 주어진 환경에 대한 정보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그 포장의 환경조건이 현재 어떤지를 알고 환경관리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어떤 밭에서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토양을 검정해본 결과 
유효 인산 함량이 400 ppm 정도였는데 농사를 지으면서 앞으로 토양 중 
유효인산 함량을 400 ppm 정도로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질소에 비해 인산이 
더 많이 들어 있는 유기질비료 같은 것은 쓰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합리적인 환경농업을 위해서는 수시로 토양과 수질 같은 것을 검정하면서 
농사를 짓는 일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피면서 비료나 
그 밖의 농자재를 주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서 이런 농법, 저런 농법을 따른다고 해서 환경농업이 
절로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환경도 배려하는 농사란 늘 환경을 살피면서 환경의 변화를 최소화하도록 짓는 농사다. 
농사직설(農事直說) 
이 책은 조선조 세종 때(1429년) 어명을 받고 정초(鄭招)가 지은 농서(農書)다.
농사에 경험이 많은 농촌의 노인(村老)들의 의견을 모아 지었다는 이 책은 
그리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아주 놀라운 내용도 담겨 있다. 이런 내용도 있다. 
“땅의 좋고 나쁨을 판별하려면 땅을 한 자쯤 판 다음 조금 떼어 맛을 보라. 
그 맛이 달면 상(上)이오, 짜면 하(下)이오, 달지도 짜지도 않으면 중(中)이다.”
참 놀랍다. 그 시대에 벌써 토양의 질을 판별하는 데에 관심을 가졌었으니 말이다. 
오늘날 훌륭한 토양검정장치가 있는데도 아직 토양검정을 하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는 것은 조상들 보기 민망한 일이다. 
글 출처 / 콧셤블로그에서